로마서 7장 14 25절 말씀
- 문제의 본질(14-23).
문제의 본질보다는 현상을 보면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율법이 문제는 아닙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선합니다. 신령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를 알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14절에 말한대로 내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는 고백대로입니다. 내가 육신에 속하여 죄의 노예로 팔려서 죄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주인이 원하는대로 사는 것입니다. 원하지 않아도 주인이 원하면 그대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마당쇠를 하고 싶어도 주인이 돌쇠를 하라면 돌쇠로 살아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15절을 보면,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라고 말합니다. 나는 내가 행하는 것을 모릅니다. 주인이 압니다.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합니다. 나는 선하게 살고 싶고, 악하게 살고 싶지 않은데, 악하게 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내 주인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17절에도 말합니다.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왜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라는 결과가 나올까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도다”라는 삶이 될까요? 그것은 20절 말씀대로입니다.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는 말대로 내가 내 주인이 아니라 죄가 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23절에 보면, “죄의 법이 나를 사로잡는도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죄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율법이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은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은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은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은 성품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은 내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내 자신이 팔려서 죄의 종이 되어 죄의 통치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아무리 선을 행하고 싶어도, 아무리 사랑하고 싶어도, 아무리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죄가 시키는대로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알아야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2. 누가 곤고한 사람입니까?(24-25). 누가 곤고한 사람입니까? 노력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열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입니까? 성품이 안 좋은 사람입니까? 재능이 없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열심이 좀 없어도, 노력이 조금 부족해도, 재능이 없어도 죄의 통치를 받지 않으면 그 사람은 곤고하지 않습니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행복합니다. 좋은 남편 만나면 대부분 행복하고 평화로운 것처럼, 좋은 아내 만나면 무슨 일을 만나도 서로 의지하면서 감사하게 사는 것처럼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면 곤고한 삶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곤고한 사람은 죄의 통치를 받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능력이 없어도, 의지가 약해도, 집안이 안 좋아도, 몸이 아파도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나는 행복한 사람!!! 이라고 고백하면서 주안에서 살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