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1장 1 19절 말씀
- 요단 강 동편(1-19).
르우벤과 갓 지파가 요단 동편을 달라고 합니다. 이 부분이 다른 지파들에게는 욕심으로 보일 수도 있고, 사기를 떨어 뜨릴 수도 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처럼 요단 서편에 있는 약속의 땅에 가지 않고, 요단 동편으로 만족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염려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르우벤과 갓 지파가 제안을 합니다. “우리가 이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도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쪽 곧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먼저 기업을 받고, 나머지 지파들을 위해서 자신들이 온 힘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또한 서편에서는 기업을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먼저 받았다면, 아직 받지 못한 다른 분들을 위해서 온 힘을 기울여서 그들도 우리처럼 기업을 가진 사람들이 되도록 값없이 삶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함은 마땅합니다. 그런데, 먼저 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반으로 삼고, 그것을 이용하고, 그것으로 오히려 없는 사람을 소외시키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기득권을 주장하는 분들이 많은 것이 세상이고,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세상은 고통스러운 곳이 되고, 교회도 자기 욕심으로 가득차고, 다른 교회가 힘들어지는 것을 외면하고, 오히려 자신들은 부유하고 부흥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삶에 빠지면서 이런 교회가 모델이 되고, 이런 교회 목사가 강사로 돌아다니는 일들도 많고, 유명세를 가지게 됩니다. 성공은 다른 분들을 위한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성공이 나는 높이고, 나를 유명하게 한다면 그것은 마귀적인 성공입니다. 정욕적인 성공입니다. 먼저 됨이 나를 높이고, 나의 욕심을 채우는데 쓰인다면 그것은 마귀적이고 정욕적인 높음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제 먼저 된 교회, 먼저 된 사람들이 르우벤과 갓 지파처럼 다른 사람들이 기업을 얻도록 하고, 다른 교회가 세워지도록 온 힘을 기울이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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