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7장 1 17절 말씀
- 누가 사막의 떨기나무 같은 사람인가?(1-17).
6절에서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은 땅에 살리라”고 합니다. 대체 누가 사막의 떨기나무 같은 사람일까요? 5절에서 말합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그 사람은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은 삶을 살게 되는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다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다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을 믿다가 실망하고, 사기 당하고, 육신으로 힘을 삼아 살다가 건강할 때는 모르다가 건강을 잃으면 절망하고, 낙담하면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또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적이 별로 없고, 늘 사람에게 마음이 향하고, 늘 환경에 마음이 향하여 이런 저런 뉴스와 정황을 파악하면서 살아온 떨기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출애굽기3장에 보면, 호렙 산에서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 불로 임하셨습니다.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낭는 불꽃 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도 애굽 사람을 죽여서 출애굽 하려고 했고, 자신이 재판장이 되어서 출애굽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육신을 힘으로 삼고 살았던 모습입니다. 목적은 거룩했어도 방법은 애굽에서 배운 학문과 말, 그 능통함으로 해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날 때, 떨기나무에 나타난 것은 아무도 모세와 이스라엘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런 떨기나무와 같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이신 것 같습니다. 이 모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발에 신을 벗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된 삶, 내 육신의 힘으로 사는 삶, 사람을 믿고 살아온 삶의 벗어버리는 것, 그 삶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출애굽이고,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삶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그 삶이 7절부터 나옵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라고 합니다. 이것이 떨기나무인 모세가 신을 벗는 삶이며, 떨기나무로 사는 것이 아니라 떨기나무를 찾아오시고, 떨기나무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삶, 신을 벗은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외롭게 살았습니다. 6절에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고 한 것처럼 그렇게 살아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떨기나무였는데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살게 하신 것입니다. 8절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엗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니라”. 이런 물 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은 인생이 된 모세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떨기나무가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되면 좋겠습니다. 떨기나무라도 시냇가에 심겨지면 잎이 청청하지 않을까요?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지 않을까요? 결실이 그치지 않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요? 내가 무슨 나무냐보다 내가 어디에 심겨지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라는 사람이 부족해서 못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내 힘으로 살려고 해서 못사는 것입니다. 내가 떨기나무라도 시냇가에 있으면 잎이 청청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소나무, 참나무, 무화과 나무라도 사막에 심겨지고, 간조한 땅, 건건한 땅에 심겨지면 말라비틀어지고, 죽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9절 말씀대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이라고 한 것처럼 본래 그런 사람으로 사막과 같은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사막에 살면 사막과 같은 인생을 삽니다. 시냇가에 살면 시냇가와 같은 인생을 삽니다. 나로 살면 사막에 사는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으로 살면 시냇가에 사는 인생이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하루를 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