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9장 14 20장 6절 말씀
- 재앙을 받는 이유(14-15).
부모에게 벌을 받는 많은 아이들은 꼭 잘못을 했을 때는 아닙니다. 잘못을 바로 잡아 주고, 고쳐주고자 하는 부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을 때입니다. 고집 때문입니다. 듣지 않음 때문입니다. 간수나 군인과 달리 인격적인 부모는 아이들은 실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수 하면서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방황하면서 온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엉뚱한 생각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모범생으로 자라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꼭 완벽해야 사랑스런 아들이 되는 것은 아님을 압니다. 그래서 초보를 벗어나 어느 정도 성숙하고 경륜이 쌓인 부모님들은 잘못을 범하고, 방황하고, 틀리고, 헤메는 아이들을 곧장 벌을 주고나 책망하지 않습니다. 기다려주고, 사랑해주고,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면서 대화를 나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모보다 훨씬 더 인격적인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오늘 보문에 나오는 재앙을 받는 것은 잘못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기나긴 인격적인 기다림, 사랑, 따뜻함, 배려를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동안 외면하고, 듣지 않음에서 오는 징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공식화하고, 단순화시켜서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에 대한 이해가 군인들, 간수들, 회사에서의 의미가 아닌 가장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의미로 이해되어야만 성경을 올바르게 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욱 더 성경을 사랑 안에서, 깊은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보면서 살아갑시다. 뒤에 나오는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된 사람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심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의 이음을 바스훌이라고 하지 않고, 마골밋사빕이라고 하면서 그를 징계하시는 내용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부족하고 수많은 잘못과 외식, 반복되는 비인격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으로 살도록 하셨고, 성전의 총감독이 되도록 허락하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오랜 세월 총감독의 지위에 오르는 여정에서도 그를 미끄러뜨리거나, 소외시키거나,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의 실수로, 한 번의 잘못으로 바스훌이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긴 여정의 사랑, 수많은 배려와 존중을 무시한 수십 년의 삶, 평생의 삶의 결과로서 심판을 받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심판에는 이런 깊은 사랑, 오랜 사랑, 인격적인 존중들이 먼저 있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심판의 말씀을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행위, 존재됨 앞에서 읽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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