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 34 46절 말씀
- 큰 계명(34-40).
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잉 둘째도 그와 같으니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합니다.
큰 계명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이며, 순서는 첫째, 둘째가 있지만 다 같습니다.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말한 것이 다 그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다 한 소리를 합니다. 다 같은 말이 합니다. 66권 어느 책도 다른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내용이 없습니다. 다른 복음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복잡하게 성경에 다양한 주제가 있는 것처럼 복잡하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며, 이것이 다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 성경을 파는 사람, 성경을 이런 주제로 나누어서 심오한 다른 것들이 있는 것처럼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성경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배우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려는 단순한 마음이면 족합니다. 문제는 이 단순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다른 것을 성경에서 배우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창조론을 배우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리더쉽을 배우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를 부흥하는 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좋은 성품을 가지는 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아이 양육하는 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이런 저런 것을 배우려고 하고, 가르치려고 하니 복잡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여기저기 찾아 다니고, 시간도 없고, 바쁘고, 피곤합니다. 그러면서 잘 안되면 나는 무능한가 보다, 우리 남편도 무능한가 보다, 우리 목사님도 무능한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크고 좋은 교회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그런 것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고, 단순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한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한가지를 평생 살고 싶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이것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 아멘.
2.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고 묻습니다(41-46).
이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묻습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족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주이신 분입니다. 다윗보다 먼저 계신 분입니다. 요1장에서도 선재하심을 말하셨는데, 예수님은 다윗보다 더 먼저 계셨고, 다윗의 주가 되신 분입니다. 족보에 나오는 순서를 아는 것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시는 분임을 아는 것이 중요할까요? 성경을 공부했다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발견한 것들이 대단한 것인것처럼 포장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일은 다 아는 별볼일 없는 지식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히브리어 문법으로 보면 이렇게 볼 수 있고, 헬라어 용례를 보면 성경이 완전 새롭고, 무엇으로 알면 성경의 세계가 깊어지고 하는 말들이 속지 맙시다. 족보와 끝없는 이야기들은 옛 사람들로 족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으로 족하고, 율법사들로 족합니다. 좀 덜 깊더라도, 좀 부족하게 알더라고 예수님을 누구의 자손, 어떤 대단한 분으로 아는 것이 별로 없더라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예수님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되도다 이것은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이다는 그 앎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