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8장 19 30절 말씀
1. 성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19-24). 성의 주인이 누구이냐가 참 중요합니다. 성은 거룩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이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성이 더러워지고, 추해진 것은 하나님이 주인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룩은 늘 하나님이 주인됨에서 오는 말입니다. 돈도 하나님이 주인된 돈은 거룩하게 쓰임받습니다. 사람도 하나님이 주인된 사람은 거룩한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는 성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19절에 월경을 할 때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주인됨을 고백하면서 내 욕망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22절에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입니다. 남자와 성행위를 하는 것과 여자와 성행위를 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 내 좋은대로 다양한 성행위를 하면 된다는 생각, 내 생긴대로, 내 모양대로, 자유롭게 한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주인됨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의 주인이지,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내가 주인이면 내 맘대로 해도 됩니다. 그러나, 주인이 아니면서 자기 맘대로 사용하면 방종한 것이며, 어리석은 것입니다. 남자와 동침하면 의학적으로 나쁜 결과가 나와서가 아니라, 병이 생겨서가 아니라, 내가 성의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며,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자꾸 건강 문제나 병이나 위생 문제로 접근하면 병이 안 생기게 하면 아무 문제가 없고, 잘 예방하고 준비하면 된다는 생각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안 좋은 것을 부각해서 동성간의 성행위를 비난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주인됨에 대한 고백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셨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함으로 이 부분을 다루어야 합니다. 동성애는 수천년 동안 있었고, 로마 시대에도 창궐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 때문에 동성 간의 성행위를 하는 삶에서 벗어나도록 더욱 더 복음을 전하면서 삽시다. 23절에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짐승과 성행위를 하지 않도록 합니다. 수간이라고도 하는 짐승과 성행위를 하는 일도 역시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해야 합니다. 창세기1장에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신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 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행위가 이루어져야 함을 고백해야 합니다. 쾌락이 목적이 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 되고,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것, 이벤트와 같은 성행위들에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더욱 더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살아가야겠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깊은 교제인 성적인 삶도 하나님이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주인된 삶이 되어질 수 있겠나 하는 마음으로 더욱 성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살아갑시다.
2. 땅을 더럽히지 말라고 합니다(24-30). 우리로 인해서 땅이 더럽혀지고, 더러워진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24절에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25절에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27절에도 역시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고 말합니다. 나도 더러워지고, 땅도 더러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더럽고, 깨끗한 기준도 중요합니다. 깨끗한 옷을 입고, 목욕하면 깨끗한 사람은 아닙니다. 더러운 것은 무엇이고, 깨끗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주인된 사람, 내가 주인된 땅은 더러운 땅이요, 더러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인된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요, 깨끗한 땅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그 주민들을 토해낸 것은 역거운 것을 먹었을 때, 더러운 것, 해된 것을 먹었을 때 토한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무엇이 역거운 것입니까? 무엇이 더러운 것입니다. 내가 주인된 삶, 내가 주인된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계3장에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행해서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하십니다. 역거움, 더러움으로 말미암아 토하여 냄은 하나님이 주인된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런 더러움, 역거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토를 하시고, 예수님도 토하여 내는 일이 없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