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6장 27 39절 말씀
1. 하나님께 대항하는 사람들(27-33). 대항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27절에도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칠 배나 더 징벌하리니”라고 합니다. 이미 23절에도 역시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라고 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땅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을 광야의 길에서 40년 동안 동행했던 분입니다. 또한 사사 시대에 수많은 이방 왕들에게서 건져 내신 분입니다. 다윗, 솔로몬, 아사, 요시야, 여호사밧, 히스기야 등의 왕들을 통해서 500년 동안이나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700년의 사랑을 받고도 대항하고,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징계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만 해도, 따뜻한 햇빛과 같은 사랑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바람과 같은 사랑, 비바람, 태풍과 같은 사랑은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강팍해서 햇빛과 같은 따뜻한 사랑만으로는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햇빛과 같은 사랑만으로 되지 않을 때 하는 것이 징계입니다. 사랑만으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식을 키워봐도 인간관계를 해봐도 사랑만으로는 안될 때가 많습니다. 물론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지만, 색깔이 다른 사랑, 사랑보다 더 큰 결단이 담긴 사랑, 사랑보다 더 오랜 고민이 담긴 사랑인 징계도 필요합니다. 잠언의 말씀에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낫다”고 합니다. 히브리서에 징계가 없으면 참 아들이 아니고 사생자라고 합니다. 사랑을 받는 아들마다 다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징계는 사랑을 깨닫게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대항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서 내가 주인되어 살아가고자 고집 피우는 사람들, 이같이 될지라도 청종하지 않고, 대항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입니다. 암을 생각해 봅시다. 암은 자신이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런 암환자에게 수술을 하는 의사의 심정으로 사랑의 집도를 하는 것이 징계입니다. 오늘도 징계를 받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이런 일을 당하고도”, “이같이 될지라도” 청종하지 않고, 대항하는 마음을 돌이키면서 살아갑시다.
2. 징계받는 시간의 또 다른 의미(34-39). 징계를 받는 그 시간의 또 다른 의미를 기록합니다. “너희가 원수의 땅에 살 동안에 너희의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안식을 누리리니 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 그 땅이 황무할 동안에는 쉬게 되리라”고 합니다. 악한 사람들이 살 때, 욕심이 가득한 사람들이 살 때는 모든 피조물들이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징계를 받아서 다른 곳으로 포로로 끌려 갔을 때는 땅이 안식합니다. 황무함은 우리의 관점입니다. 땅의 관점에서 보면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만을 돌보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피조물들도 돌보십니다. 징계를 받는 시간은 우리의 관점에서는 고통스런 시간이지만, 우리의 죄악과 욕심으로 고통을 받는 땅, 즉 모든 다른 피조물에게는 은혜와 회복의 시간이고, 평안의 시간입니다. 황무함이 그들에게는 은혜입니다. 악한 나, 욕심 많은 내가 징계를 받는 시간의 또 다른 의미는 다른 사람, 다른 피조물에게는 안식입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내가 욕심을 내려놓으면 안식할 사람들이 있을까? 내가 고집을 꺾으면 안식할 사람이 있을까? 혹시 내 아들이 안식할까? 내 딸이 안식할까? 내 아내가 안식할까? 내 남편이 안식할까? 혹시 우리 교인들이 안식할까? 생각해 봅시다. 욕심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쉬지 못하게 하고, 열심과 탁월을 내세우면서 몰아치기 쉽습니다. 내가 징계를 받아야만 사람들이 안식할 수 있다면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징계의 또 다른 의미는 안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