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1장 1 23절 말씀
- 피살된 시체 앞에서(1-9).
내 삶의 자리인 성에서 가까운 곳에 피살된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피살된 시체와 가까운 성의 모든 장로들이 이 일을 책임지도록 하고, 제사장이 이 부분에 대해서 피흘린 죄가 없음을 고백하고, 멍에 메지 않은 송아지를 끌고 가서 하나님 앞에서 잡도록 합니다. 대부분 피살된 시체가 발견되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봅니다. 권력자들은 이 부분에서 별 책임을 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백성들을 시켜서 매장하도록 한다든지 추궁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당대의 권력자인 장로들과 제사장에게 이 일을 하도록 하고, 백성들은 그 책임을 먼 곳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가 하지 않은 일,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일어난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지도자들, 권력자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그 일을 담당하고, 짊어지는 모습이 오늘 말씀에 나옵니다. 우리도 은혜를 받은 장로라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사죄의 은총을 체험한 제사장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런 태도를 가지는 것이 성경적인 사람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체험한 사람들이 이런 일은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 몰라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동체 주변에 일어난 깊은 죄악, 고통스런 죄의 결과들 앞에서 내 탓이며, 내가 이 부분을 담당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는 가운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신앙적인 부분에서도,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귀한 장로, 귀한 제사장적 삶을 왕같은 제자상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이런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2. 포로된 여인을 대하는 태도(10-14). 고대에 포로는 인권이 없습니다. 아무런 저항도, 법적인 대응도 할 수 없고, 자신의 감정을 배려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정결을 지킬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없고, 사회적 제대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포로된 여인을 위해서 포로의 의복을 벗도록 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한 달을 부모님을 위해서 애곡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포로된 여인의 가족들은 전쟁이나 약탈을 당하면서 죽음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았으니 이런 애곡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합니다. 그후에 네 아내가 되도록 합니다. 또한 함부로 버림 받지 못하도록 하고, 돈을 받고 팔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를 종처럼 여기지 않도록 합니다. 결혼이라는 자리는 그 여인이 어떤 신분이었든, 어떤 상황에 놓여서 하였든 간에 그 상대방을 가장 인격적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그가 포로더라도, 그가 어떤 낮은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든 가장 인격적이고, 가장 감정적인 배려를 함이 있어야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혼의 삶을 사는 것임을 생각게 합니다. 포로된 여인을 이렇게 인격적으로 해야 한다면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과 결혼한 우리는 우리의 배우자를 얼마나 더 인격적으로 대해야 할까 싶습니다. 더욱 더 배우자를 인격적으로 배려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면 참 좋겠습니다.
3. 참 장자(15-17). 참 장자는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태어나게 한 사람임을 말합니다. 내가 미워하는 여인의 아들이라고 하더라고 결코 장자의 명분을 빼앗으면 안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늘 내 감정, 내 취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여인의 자식이 장자임을 고백할 때, 다시 그 아이를 사랑할 마음이 생겨나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소중하게 대하는 인격적인 아버지의 삶이 일어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냥 내 마음대로 장자를 정하고, 내 감정대로 결정할 수 있다면 미운 마음이 생긴 자식은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평생 상처받은 마음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 아이의 어미이자, 아내된 여인에게도 비인격적으로 대하면서 살게 되는 죄악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살 때, 미움, 차별, 함부로 하는 삶에서 벗어나게 됨을 생각하면서 더욱 더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면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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