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묵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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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마가복음 5장 21 34절 말씀2024-02-21 07:41
작성자 Level 10

마가복음 5장 21 34절 말씀


  1. 예수님의 걸음을 따라갑시다(21-24).

예수님은 다시 배를 타고 맞은 편으로 오셨습니다. 다시 큰 무리가 그에게 모여들었습니다. 그때에 회당장 야이로가 와서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구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에게서 머물러 있는 것과 야이로의 딸에게로 가는 삶에서 야이로의 딸에게로 가는 삶을 선택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숫자와 크기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걸음은 그런 곳으로 향하지 않습니다. 연약한 사람, 딸로 인해서 마음이 아픈 아버지와 함께 동행하는 걸음을 걷습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누구와 동행해야 하는지, 어디로 걸음을 옮겨야 하는지 예수님을 보면서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목회자와 성도, 교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발걸음이 예수님을 따라 걷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작은 교회나 큰 교회의 걸음, 향하는 마음이 예수님이 주인되어짐으로 야이로의 딸에게로 가는 그 걸음마를 아이가 걷는 것을 배우는 것처럼 성경을 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때 아이가 한 걸음만 떼어도 기뻐했던 부모처럼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2. 야이로의 딸에게 가다 멈추신 예수님(25- 34).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에게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십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온 여자가 소개됩니다. 많은 의사에게서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을 다 허비하였지만 아무 효험도 보지 못하고 도리어 더 병이 중해진 여인으로 인해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이 여인은 혈루병자입니다. 피가 흘러 나오는 여인입니다. 만지만 부정해집니다. 아무도 만지지 않습니다. 병만 걸린 것이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버림 받는 자리, 율법적으로도 부정한 여인이 된 이 여인으로 걸음을 멈춥니다. 그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옷에 손만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고, 혈루 근원이 마르게 되었습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능력이 나가신 줄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하십니다. 그 여인을 보려고 둘러 보십니다. 그 여인이 떨며 엎드러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멈추었을까요? 왜 예수님은 그 여인을 보려고 하셨을까요? 

어떤 부흥사처럼 은혜를 받았으면 간증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어떤 부흥사처럼 은혜를 거져 받으면 안된다고 헌금하라고 한 것일까요? 어떤 목사처럼 은혜를 받았으면 감사를 해야지 라고 말하려고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는 피흘리는 부정한 여인, 야이로의 딸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버림 받은 딸로 살아가는 이 여인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입니다. 

딸아 라고 불러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너 야이로와 같은 아버지가 없다고 울지 말라, 슬퍼하지 말라, 너는 야이로 같은 아버지가 없지만, 네가 너의 아버지다. 딸아 라고 불러 주시기 위해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 여인을 찾으신 것입니다. 야이로와 같은 아버지 없는 설움을 가진 여인, 소외감에 있는 이 여인에게 살롬을 주시고, 아버지가 되심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그 여인을 딸 삼으시려고, 딸 되심을 확인시켜 주시려고 걸음을 멈추시고 그 여인을 보시려고 한 것입니다. 병만 조용히 낫고 가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온전케 하시고, 마음을 따뜻하고 평안하게 하시고, 예수님이 내 아버지됨의 복음을 누리며 평생 살도록 하기 위해서 걸음을 멈추신 것입니다. 헌금하라고, 간증하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은혜에 보답하라고 이 여인을 찾지 않았습니다. 병 나은 것처럼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그 여인을 보고자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멈춤, 그 여인을 딸이라고 부르시는 부름 앞에 머물면서 조용히 눈물 흘리고, 감격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야이로와 같은 아버지 없는 삶에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