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장 31 5장 11절 말씀
-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32-5장 11절).
많은 분들이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나오는 부분을 보면서 이 말씀을 통해서 공산주의가 나왔다고 말합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는 말씀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라는 것입니다. 강제가 아니라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모두가 같은 마음이 임할 때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항상 모든 교회나 조직이나 국가가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예루살렘에 특별한 상황 속에서만 있었던 일입니다. 이것이 다른 교회, 다른 지역에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강제성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성경적이라고 말하면서 해서도 안됩니다. 구약의 어떤 교회도, 어떤 공동체도 이런 일을 교리적으로 내세운 적도 없습니다. 신약의 어떤 교회도 이것을 일반화한 적도 없습니다. 성경에 나왔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에 나온 것이니 이것이 해법이라고 말해서도 안됩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부족함이 없고, 사랑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그런 일은 자발성과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우러남을 통해서 일어나게 되는 일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내용도 그렇습니다. “밭과 집이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자기 소유에 대해서 자기가 팔고, 자기가 갖다 놓는 삶이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해줍니다. 이것을 흉내내거나, 이것이 모두가 해야 할 모델이 되거나, 이것이 인정받는 일이 되거나,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 이야기가 아나니야와 삽비라의 비극적인 일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그들도 함께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 값의 얼마나 감추고 갖다 놓습니다. 인정받고 싶고, 그렇게 하면 멋질 것 같고, 그렇게 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 비췰 것처럼 생각하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모델을 삼고, 너무 자주 어떤 교회나 공동체에서 그런 것을 다들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타날 위험이 높습니다.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하는 모델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집을 팔지 않고 그 집에 나그네들이 머물도록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땅을 팔지 않고, 그 땅에서 열심히 농사해서 가족들의 필요를 채우고 남은 수익으로 성도와 교회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실제로 구약 성경과 사도행전과 복음서와 서신서와 교회 역사 속에서 그런 일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유와 헌신은 항상 쌍을 이루어야 합니다. 헌신에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성경적인 헌신입니다. 외압이나 분위기, 사람에 의해서 그것들이 강요되는 것은 사탄적인 헌신이며, 세속적인 헌신입니다. 신령하고, 거룩하고, 온전하며, 성경적인 헌신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자발적이고 자유롭고, 신령한 헌신만 있는 교회와 성도가 되도록 힘쓰면 좋겠습니다. 억압적이고, 자기 의를 세우고, 따라하고, 모양을 내고, 어쩔 수 없는 헌신이나 헌금을 하는 세속 종교인의 모습, 체면 유지와 같은 행위들이 없어지도록 노력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