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장 1 17절 말씀
- 백부장의 종을 위한 걸음(1-10).
백부장은 군인입니다. 로마의 앞잡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 가는 것도 윤리적,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올바르지 않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을텐데, 그 백부장의 종을 위하여 가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기적은 백부장의 종이 나음에 있지만, 본질은 예수님의 걸음에 담긴 사랑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적, 대단한 실적, 놀라운 결과를 원하기 때문에 성경도 결과 중심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정치적 위치에 있든, 어떤 삶을 살았던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종마저도 사랑하시면서 발걸음을 움직여 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에 담긴 사랑이 본질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대단한 돈을 버는 기적이 필요한지, 진영을 넘어서서, 인종을 넘어서서, 국가를 넘어서서, 노사를 넘어서서 사랑하는 삶을 사는 기적이 필요한지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걸음에 담긴 사랑을 묵상하면서 오늘도 살아갑시다.
2. 과부의 아들을 살리십니다(11-17). 한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사회적 지위나 그 사람의 외모를 중심으로 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죽은 한 사람, 과부의 아들을 이렇게 봅니다.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외적으로 보면, 죽은 시체입니다. 별로 의미를 가질 만한 사람의 죽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죽은 아이는 과부의 독자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랑 안에서 이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됩니다. 성적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재산으로 보면 쓸모없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업적으로 보면 한 줄도 쓸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걸음 속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예수님의 멈춤 속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예수님이 만지심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인생의 현재의 자리들이 이렇게 사람의 외모, 업적, 성적, 성과, 지위, 결과물을 중심으로 보면 성경을 보아도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관에 손을 대십니다.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듯이 그렇게 손을 대시는 예수님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더러움을 입고, 부정함을 입으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시고, 치료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걸음, 예수님의 손길, 예수님의 마음을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배워가고 닮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