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7장 1 21절 말씀
- 노동자의 삶에 자신을 비유한 욥(1-21).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햇빛 아래서 힘들게 노동하면서 저녁 그늘을 바라듯이, 품꾼이 삯을 기다리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러면서 고달프기 때문에 나오는 탄식, 한숨, 짜증을 내는 말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감사해야지, 기뻐해야지, 웃어야지 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하루면 몰라도, 3절에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처음에는 감사하면서 지냈지만, 인간의 한계를 넘어가고, 체력의 한계를 넘어간 것입니다. 1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바다도 아니고, 바다 괴물, 즉 엄청난 공룡처럼 큰 존재가 아닌 욥으로서는 도저히 이겨낼 상황이 아님을 말합니다. 14절에 보면 “나를 놀라게 하시고,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라고 합니다. 15절에서는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면서 살고 있다”라고 합니다. 체력의 한계로 가다가 쓰러지는 사람들을 누가 정죄하겠습니까? 감정의 한계선을 넘어갔을 때 짜증을 내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욥이 의인이었지만, 그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입니다.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계가 있습니다. 자식이 다 죽었는데 왜 한계가 안 넘어가겠습니까? 모든 재산을 잃었는데 왜 한계를 안 넘어갔겠습니까? 건강을 잃었는데 왜 한계를 안 넘어갔겠습니까? 짜증, 분노, 불평, 원망을 하는 사람들을 누가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나도 한계가 있고, 나도 한계를 넘어가면 그러할 것인데 누가 비판하고, 누가 판단하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계신 분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추하다고 생각하거나, 경건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참을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고통과 아픔을 같이 체휼하면서 기도하는 대제사장으로 사셨던 하나님과 마음을 합해서 함께 기도해 주는 좋은 이웃이 되어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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