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장 14 26절 말씀
- 들을 귀가 없는 제자들(14-21).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며 배에 떡이 한 개 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느냐..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제자들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체험했으면서도 아직도 떡이 없느냐, 있느냐에 눈과 귀가 쏠려 있고, 마음이 거기에 집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했는데도 떡이 없음이로다 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떡이 없으니까 우리에게 이런 꾸중을 하시는 걸까? 떡을 놓고 오시는 것을 책망하시는 걸까? 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헤롯도 자신의 잘못인 동생의 아내를 취한 죄를 지적한 세례요한을 죽인 죄를 중심으로 생각하여서 내가 죽인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장로들의 전통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판단하여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제자들도 떡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자신의 기분, 상태, 마음이 달라지고, 떡이 있는 삶에 온 힘을 기울여 살아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했지만 떡이 없음이로다, 떡을 우리가 가져오지 않아서 혼나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떡이 없음으로 너희를 책망하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다. 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떡을 먹고, 하나님 나라의 교훈, 하나님 나라를 배우느냐 마느냐가 중요한데, 떡을 가져오느냐, 거져오지 못하느냐로 내가 너희를 책망할 리가 없다고 하십니다. 잘 보지 못하는 사람,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때로는 자신이 죄에 사로잡혀, 때로는 자신의 목표, 자신의 외모에 사로잡혀 있을 때입니다. 사랑하면 잘 듣습니다. 욕심이 없으면 잘 들을 수 있습니다. 미워하면 못 듣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면 안 들리고, 안 보입니다. 오늘도 잘 들고, 잘 보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2. 벳새다 맹인을 고쳐 주시는 예수님(22-26). 잘 보지 못하고, 잘 듣지 못하던 제자들 이야기 후에 벳새다맹인을 고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갈릴리 호수에 있는 곳으로, 벳새다는 어부들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아마 제자들의 고향이거나, 제자들의 일터였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늘 보던 맹인을 예수님을 두 번에 걸쳐서 고치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려가시고,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십니다. 이것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맹인을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손을 잡고 함께 걷고, 보지 못하는 눈을 만지십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닐리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보이느냐 묻습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본다고 합니다. 이어서 다시 눈을 만지시니 모든 것이 밝히 보입니다. 제자들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아직 잘 보지 못하고, 잘 듣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불렀고, 데려 가셨고, 동행했고, 사랑을 받고 있지만, 아직은 나무 같은 것으로 보이고, 초점도 흐리고, 엉뚱하게 보고 듣지만 나중에는 밝히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밝혀 주시고, 주님께서 우리의 귀를 열어 주십니다. 이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성경도 보고, 인생도 살아가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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