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장 1 12절 말씀
-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시는 예수님(1-12).
2절에서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리시되 라고 말합니다. 4가지 땅을 말하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자라지 못하는 것과 자라게 되어 결실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내용은 어렵다고 볼 수도 있고, 쉽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내용을 알아 들었느냐? 못 알아 들었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이해했느냐, 이해를 못했느냐가 아닙니다. 9절에 예수님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합니다. 그러자, 10절에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라고 하시면서 비유를 설명하여 주십니다. 누가 비유를 깨닫는 것일까요? 들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 비유에 대해서 예수님께 물은 사람들입니다. 답을 예수님께 찾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답을 찾아낸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께 물으러 온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해석을 나름대로 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나름대로 잘 묵상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나름대로 잘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고, 성경을 온전하게 밝혀 주실 분도 예수님입니다. 오늘날은 수많은 설교자, 책, 동영상들이 성경을 해석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좋은 글, 뛰어난 학자, 목회자, 성경공부 인도자, 자료들이 있습니다. 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것은 말씀을 들을 때마다 예수님께 묻는 것입니다. 듣는 마음의 완성은 그 들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들음이 헛되게 되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말씀을 듣고 자기 의로 행하려고 하는 것처럼 듣고 자기 지혜나 이런 저런 자료나 글을 의지하여 나름대로 해석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어리석고, 아무 것도 해석하지 못한 제자들이 듣고 나서 다시 예수님께 나아가서 묻는 것보다 더 온전한 길은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예수님께 다시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허락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외인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지식적으로는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더 예수님을 의지하고, 더 예수님과 대화하고, 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더 예수님과 시간을 보냄이 궁극적인 자리입니다. 말씀을 듣고 이 책도 보고, 저 책도 찾아보고, 이 학자의 말도 들어보고, 저 학자의 말도 들어보고, 이 동영상도 보고, 저 동영상을 보는 삶을 살아야 해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예수님과 친밀한 삶이 무너진다면 가장 어리석은 자리에 들어간 것입니다. 자신은 학자의 자리로, 깊은 지식의 세계로, 남들이 모르는 대단한 자료를 얻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말씀을 읽으면서 더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성경을 온전히 알아감의 여정이 있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말씀을 볼 때마다 더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 들을 귀 있는 자가 되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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