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1장 11 29절 말씀
- 기쁨의 순간(11-16).
나봇의 포도원은 아합이 그렇게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 막혀 있었습니다. 왜나하면, 토지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조상의 유산으로만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봇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뒤집은 것은 바로 이세벨의 술수입니다. 거짓과 폭력, 불량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아합을 죽인 살인입니다. 사탄적인 거짓과 폭력, 살인을 통해서 얻었습니다. 가장 갖고 싶은 것이더라도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이라면 끙끙거리면서도 포기해야 합니다. 할 수 있더라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조언자들, 이런 조력자들로 인해서 죽은 사람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암논입니다. 다윗의 큰 아들이었지만,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해서 파리해져가면서도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기 때문에 견디고 있었는데, 요나답이라는 조력자가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역시 끙끙거리며 견디고 있는 아합에게 돕는 베필이 되어서 아합을 죽음으로 이끈 사람이 이세벨입니다. 도움, 해결책, 지혜를 함부로 받지 않아야겠습니다. 묵묵히 끙끙거리면서 살아야 할 것들은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해결되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다 하면서 사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는 것도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사람들의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끙끙거리고, 답답하고, 근심하면서 어찌하지 못하는 모습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사람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2. 다시 끙끙거리는 아합(27-28). 엘리야로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도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아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여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재앙을 말을 듣고 아합은 엘리야를 죽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합니다.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아합은 말씀을 듣고 풀이 죽습니다. 금식합니다. 이런 아합을 보고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고 하십니다. 우리 말로 기가 죽는 것이 은혜입니다. 풀이 죽는 것이 은혜입니다. 다시 끙끙거리고, 다시 답답해하고, 다시 근심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기분좋은 아합, 성취감에 빠진 아합은 항상 위험했습니다.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기분이 좋아서 조약을 맺을 때도 그렇고,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했을 때도 위험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풀이 죽고, 눕고, 답답하고, 힘이 빠졌을 때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런 힘빠짐, 답답함의 시간을 주님 안에서 잘 보내는 사람이면 참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