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2장 1 14절 말씀
- 아합이 모은 선지자와 여호사밧이 찾는 선지자(1-14).
아합은 길르앗 라못을 빼앗기 위해서 여호사밧을 불러서 함께 전쟁에 나가고자 합니다. 그때에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라고 말합니다. 아합이 선지자를 400명을 모아고 묻습니다.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지 있지 아니하니이까”라고 합니다. 아합은 400명의 거짓 선지자의 달콤한 말에 만족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이상함을 느낍니다. 어색함을 느낍니다. 400명에서 나오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전혀 그런 느낌, 그런 영감이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찬성해 주고, 지지해 주는 선지자들의 말로 득의한 것으로 여기고, 의기양양합니다.
여호사밧이 찾는 선지자와 아합이 찾는 선지자가 달랐습니다. 아합은 자기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 400명의 선지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들은 열왕기상18장 22절에 나오는 바알의 선지자 400명과 다를 바 없는 선지자였습니다. 바알의 선지자, 우상숭배하는 선지자, 물질중심의 선지자, 세상적인 선지자와 다를 바 없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숫자도 동일하게 400명으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이단이나 사이비, 무당이나 점치는 점쟁이나 다를 바 없는 목회자나 선교사도 있습니다.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사람들을 만족시켜주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그들이 원하는 말,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뒷밭침 해주는 말씀은 전하면서 부를 누리고, 권력의 단물을 먹고 살고, 출세하고 성공하는 목회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나는 아합과 같은 사람은 아닐까요? 바알의 400명의 선지자와 다를 바 없는 그런 선지자를 찾는 사람은 아닐까요?
반면에 여호사밧이 찾은 선지자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400명의 선지자와는 다른 미가야와 같은 사람을 찾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니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라고 말합니다. 여호사밧은 길한 것을 예언하는 선지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흉한 것을 예언할 수 있는 선지자, 내 비위를 맞추는 선지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찾습니다. 오늘날 미가야 같은 선지자는 아합 시대처럼 왕궁에 있지 못합니다.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습니다. 왕들과 같은 대단한 사람들의 모임에 초대받지 못합니다. 홀로 버림 받는 자리에 있습니다. 여호사밧 같은 사람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미가야같은 선지자도 드물지만, 여호사밧 왕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사람도 드뭅니다.
아합은 400명의 거짓 선지자에게 어울리고, 여호사밧은 미가야가 어울리고 마음에 맞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선지자와 어울리고, 어떤 선지자를 찾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