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3장 1 22절 말씀
1. 악한 지혜자(1-14). 다윗의 아들 암논이 다말을 사랑하지만, 그가 처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줄을 알고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라고 기록됩니다. “암논에게 요나답이라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자라”고 소개됩니다. 요나단의 소개는 마치 사단처럼 “심히 간교한자라”고 소개됩니다. 암논은 어쩔 수 없는 줄 알고 포기하면서도 앓아 누웠습니다. 그러나, 요나답은 계교를 통해서 그의 욕망, 선을 넘는 사랑, 모든 관계가 깨어지고, 죽음으로 들어가는 삶을 살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간교한 자인 요나답은 암몬에게 사단적인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그는 차라리 앓다가 죽는 것이 훨씬 나았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못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오늘날은 원하는 것은 꼭 가져야 하는 시대처럼 느껴집니다. 사고 싶은 것 사고, 갖고 싶은 것 갖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입니다. 이 시대가 사단적이교, 사단의 지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혹여라도 내 주변에 친구들이 요나답과 같은 사단적 지혜를 가진 간교한 사람이라면 속히 떠나야 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갖고 것이 없으셨고, 하고 싶은 것이 없으셨고, 욕망을 채우지 않고 사셨습니다. 교회도 이러해야 하고,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단과 사이비의 교주는 갖고 싶은 것 다하고, 욕망을 채우고, 권력을 누리고 사는 삶의 모델이 됩니다. 교회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기도를 내려놓고,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기도도 멈추고, 예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욕망이 일어날 때마다 요나답과 같은 친구를 만나면 사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말씀 안에서 사는 귀한 친구들을 통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2. 욕망의 끝(15-22). 억지로 암논이 다말과 동침하고 나서 가진 감정이 나옵니다.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마음이 전헤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리되 일어나 가라 하니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그를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고 합니다. 다말은 눈물을 흘리면서 크게 울부짖고 처량하게 지내게 됩니다. 한 인생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자신도 압살롬을 통해 죽음의 자리로 들어가게 됩니다. 욕망과 사단적 지혜의 끝은 사랑이 아니라 미움입니다. 결별입니다. 악에 더 큰 악을 더하는 삶입니다. 죽음입니다. 우리가 욕망을 따라 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불을 보듯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욕망을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 갖지 못하면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안 넘어가는, 마약을 갖지 않으면 오는 금단현상을 느끼는 마약 중독자처럼 초조한 상태를 이기지 못하고 마약을 하는 것과 같이 욕망을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이런 비참한 감정과 결별, 쫓아냄과 눈물로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이 일로 말미암아 압살롬이 암논을 죽일 계략을 세우게 됩니다. 아버지 다윗도 듣고 크게 노하였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파괴되고 맙니다. 지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속한 순전한 지혜이고, 하나는 사단에게 속한 간교한 지혜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인 순전한 지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를 사모하고, 그 지혜를 누리면서 살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