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19 31절 말씀
- 성령 충만한 사울의 모습(20-22).
17절에서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말합니다.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은 성령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 첫 번째 일은 20절에 나온대로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 22절에 나온대로 “사울이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사울이 변화된 것은 한가지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하고, 증언하는 일입니다. 이 사울의 삶이 이렇게 된 것은 예수님을 만났고, 성령 충만해져서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삽니다. 사실 이 성령 충만, 예수님을 만나는 삶도 내가 원해서 한 것도 아니고, 내가 간절히 기도해서 된 것도 아닙니다. 은혜로 된 것입니다. 악랄한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삶은 훈련으로 되지도 않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고, 살아가게 될 것이지만,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습니다. 제자들처럼, 사울처럼 헤메기도 하고, 예수님을 거부하기도 하고,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도 하는 자리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은혜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에 들어가리라 믿으며 때와 권한을 아버지께 두고 사모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2. 고난 중에서 평안한 교회(23-31). 사울은 여러 날을 이렇게 예수님을 증거하자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공모합니다. 자신이 이전에는 잡아 가두고, 죽이는 자리에 있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죽음의 위협을 느끼고 광주리로 밤에 몰래 도망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울은 이 삶을 통해서 자신이 과거에 했던 일이 얼마나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얼마나 무섭게 하는 삶인지를 몸소 체험하면서 더욱 더 죄인임을 크게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26절에 보면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라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래서 사울이 예루살렘에 출입하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변론하니 이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씁니다. 그래서 사울을 가이사랴로 보내고 다소로 보내서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하라고 하지 않고, 피하고 사울의 고향인 다소에서 쉬도록 배려합니다. 교회는 순교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피하고, 도망치고, 쉬고, 살도록 합니다. 31절에 보면,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더라 라고 기록됩니다. 교회가 숫자가 늘어나게 된 것은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경외하면서 살면 되고, 성령의 위로하심이 있으면 됩니다. 갈릴리와 사마리아는 행8장에서 일어난 박해로 뿔뿔히 흩어진 고난 당하는 성도들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이렇게 고난과 아픔을 겪고 있는 성도들을 성령님이 위로하심으로 교회가 든든해지고, 사람들이 그 위로를 받으면서 교회가 평안하게 되고 숫자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일들이 없습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성령님의 위로하심이 있으면 교회입니다. 고난 중에서도 은혜를 받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참 좋겠습니다. 훈련도 없고, 프로그램도 없는데 든든한 교회, 평안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가 된 것을 보면서 지금은 훈련도 많이 하고, 프로그램도 많은데 오히려 평안도 없고, 든든함도 없고, 성장도 없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