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묵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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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히브리서 7장 20 28절 2022-07-11 07:52
작성자 Level 10

히브리서 7장 20 28절 말씀


1. 레위 계통의 제사장보다 더 온전한 예수님

11절에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제사 직분도 바뀌었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라고 말합니다. 18절에 나온대로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라고 합니다. 22절에서도 “이와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라고 합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는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더 온전함을 말했습니다. 23절부터는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많은 이유는 죽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가 하는 일이 얼마나 온전한지가 결정됩니다. 아론은 불안전한 사람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기도 했고, 그 자녀인 나답과 아비후도 다른 불을 드리기도 했고, 그 이후에 일어난 수많은 제사장들도 역시 인간적인 약점과 세상에 속한 행위들을 하면서 다윗 왕국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이끄는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당시에는 로마의 통치를 받으면서 정치적인 갈등과 욕심 때문에 대제사장이 동시대에 두 명이 있는 경우도 있었고,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우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사람이 온전하면 일도 온전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불안하면 일도 불안합니다. 사람이 일하기에 그 일의 온전성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론과 예수님은 비교가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론 계통의 제사장직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님의 제사장직에 도저히 따라올 수 없고, 비교될 수 없습니다. 

왜 예수님은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라고 말한대로입니다. 그들은 죽지만 24절 말씀대로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렇습니다. 

26절에 나온대로 이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라고 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직과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비교될 수 없습니다. 아론과 예수님의 질적 차이만큼 차이가 납니다. 그럼에도 구약의 제사장들과 제사장직이 유용한 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예수님을 드러내고 예비했고, 그들의 제사장직도 예수님의 제사장직으로 우리를 이끄는 몽학선생과 같은 역할을 했고, 부족함에도 그들의 동물제사와 그들의 한시적인 사역들이 예수님의 영원한 사역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늘 기억합시다. 무엇을 더 나으냐보다는 존재의 온전성, 존재됨, 사람됨, 인간됨, 존재의 무게만큼 그 일도 그 무게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한시적입니다. 우리도 죽습니다. 우리의 사역도 부분적입니다. 그런 우리가 하면 얼마나 하고,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에 온 집중을 하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일에 온 마음으로 드리면서 살아갑시다. 아론이 그렇듯이 내 사역, 내 일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향하도록 하는 역할만 감당하면 불완전한 존재이며, 한시적이지만 충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불완전하면서 완전하려고 기를 쓰고 살기 보다는, 안되는 것을 되게 하려고 하기 보다는, 완전한 존재, 완전한 사역을 하고자 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데 온 힘을 기울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