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장 19절 4장 4절 말씀
- 어떻게 하든지 옆에 두고 싶었는데...(19-22).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들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들 중에 아름다운 기업인 이 귀한 땅을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라 하였노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너희가 확실히 나를 속였느니라....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렸음이로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예레미야서를 마쳐질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떻게든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셨고, 백약을 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그들을 향한 사랑은 진실하였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은 거짓된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진실해야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용서합니다만, 거짓으로 하는 회개나, 거짓으로 하는 친절이나 거짓으로 하는 성적 행동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의 모양이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은 행위도 아니고, 사랑은 말도 아니고, 사랑은 그럴듯함도 아닙니다. 사랑은 진실이어야 합니다. 거짓 행위, 거짓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면, 그 사람도, 그 존재도 거짓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두고, 어떻게든 사랑하고, 어떻게든 용서하고, 어떻게든 다시 기회를 주고 싶지만, 철저히 속이고, 농락하고, 끝까지 거짓으로 일관하는 이스라엘의 거짓 사랑을 참된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하나님의 아픔입니다. 하나님은 늘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고, 늘 따뜻하게 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거짓을 진실로 받을 수 없고, 마음에서 죄에 대한 깨달음이 없이 하는 회개를 받아들일 수는 없는 고통스런 기다림과 오래 참음의 시간을 보내시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배우자들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용서하고 싶어도 거짓 회개, 거짓 애정을 받아들이면서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 수 없는 것 같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함과 위선하지 않아야 함과 외식하지 않아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완벽하려고 하기 보다는 진실하여야 하고, 좋게 보이려고 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부족함까지도 받아주실 하나님을 믿고 꾸밈없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갑시다.
2. 참된 회개인지, 거짓 회개인지 모르겠습니다(23-4:4). 23-25절을 보면 내용적으로는 참된 회개로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반응이 담긴 1-4절을 보면 거짓 회개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이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를 하지 않은 것임을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4절도 그렇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고 합니다. 마음 가죽을 벤 할례가 아니라 표피를 벤 할례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하고자 함이 아니라 재앙을 벗어나려고 하는 겉모양을 낸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들의 회개가 아무리 진실하게 보여도 하나님만 참된 회개인지 아십니다. 누가 회개했는지, 회개하지 않았는지를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사람들이 회개를 한다해도 너무 들뜨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면서 살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