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2장 20 32절 말씀
- 고기를 먹고 싶을 때(20-28).
우리 어렸을 때도 거기를 먹는 날은 추석이나 설날 정도였습니다. 고대에도 아마 고기를 먹는 날은 제사를 드리는 때, 즉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같은 명절에 고기를 먹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즉 명절은 곧 제사를 드릴 때입니다. 그런데, 그 외에도 고기를 먹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플 때라든지, 누군가를 섬기고 싶은 때라든지 생일이라든지, 환갑이라든지 개인적인 일로 고기를 먹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 이르기를 내가 고기를 먹으리라 하면 네가 언제나 마음에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너는 여호와께서 주신 소와 양을 잡아 네 각 성에서 네가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먹되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을 수 있거니와 다만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동안 늘 함께 있고, 함께 먹었습니다. 늘 가까운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런데, 20절 말씀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라는 말씀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공간적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고기를 먹도록 하십니다. 제사 때만 아니라 언제든지 마음껏 먹도록 하십니다. 성소에서 멀어도 먹도록 하십니다. 세금도 없습니다. 꼭 제사장이나 레위인을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무슨 명분을 대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먹으면 됩니다. 그러나, 피는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온전히 자유롭게 하시고, 아무런 제약도 두지 않으시면서 단지 피만 먹지 않도록 합니다. 피를 먹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제사를 드리더라도 같은 조건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명분을 갖다 붙이고, 이런 저런 제약을 하고, 이런 저런 조건을 따지는 일이 참 많습니다. 오늘 말씀대로 하면 좋겠습니다. “네가 언제나 마음에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 아멘. 언제나 시간적인 자유, 원하는 만큼 내 마음에 욕구를 충분히 채우도록 하심이 나옵니다. 교회 안 밖에서 서로 무한한 자유, 아무런 조건 없는 자유, 욕구를 충분히 충족하도록 하는 배려를 오늘 말씀 속에 나오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2. 다른 신을 탐구하지 말라(29-32).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가나안의 종교는 인신제사를 드렸습니다. 인간의 몸을 제물로 드리도록 합니다. 심지어 자녀들을 그렇게 합니다. 이런 풍속들은 고대 수많은 나라들의 종교의식에 나타납니다. 또한 고대에는 성전에서 일하는 성창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종교행사에 성적인 도구로 자신을 내놓고 봉사해야 하는 일들이 의무적으로 주어지게 되곤 했고, 성전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성행위를 하는 일들이 빈번했다는 것을 기록들과 성전 구조들을 연구한 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져 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방법은 헌신입니다. 내 자식까지 , 내 몸까지 신에게 내주었으니 내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 자식까지 바쳤다는 것입니다. 내 몸까지 드렸으니 복을 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헌신을 했으니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이 지극히 우상숭배적이고 무속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내가 헌신해서 복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복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헌신하는 것은 그 사랑에 감격해서 하는 것이지 복을 받기 위한 무속적이거나 우상숭배적인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만약 헌신해서 복 받으려고 하는 것은 우상숭배적이지 않고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무한한 자유를 주신 하나님, 무자비한 헌신, 비인격인 헌신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