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묵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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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신명기 22장 13 30절 말씀2024-04-06 08:19
작성자 Level 10

신명기 22장 13 30절 말씀


  1. 악을 제할지니라(13-30). 

오늘 본문에는 계속해서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할지니라”,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라는 말씀이 21,22,24절에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종류이 죄는 다 성적인 부분입니다. 

왜 유독 성적인 부분, 성적인 죄가 이스라엘 전체에 미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까 싶습니다. 다른 죄도 이스라엘 전체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유독, 성적인 부분에서 너희 가운데서, 너희 중에서,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는 말을 거듭 말하는지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결혼, 성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것입니다. 창조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 본질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의 목적이 성생활, 결혼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함에 있는데, 그것이 무너지게 만드는 근본적인 것이 바로 성적인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번성해야 하는데, 자기 욕망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성적이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약혼한 처녀, 약혼한 후에 동침하고, 자기 힘으로 동침하는 것, 강간하는 것, 처녀를 욕보이는 것, 약혼한 처녀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 이웃의 아내를 욕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더러워지고, 그것을 욕망대로 하고, 힘으로 하고, 억지로 한다면  하나님 형상, 모양이 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다른 죄는 몸 밖에 있거니와 성적인 죄악을 그 죄악이 몸 안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죄보다 더 치명적이며, 그 죄악은 자신의 몸에 있기 때문에 다른 죄악보다 더 그 사람을 괴롭히고, 더 무섭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성적인 범죄는 잘 생각해 봅시다. 

성적인 범죄는 가장 사랑해야 할 자기 아내를 향한 죄입니다. 또한 늘 함께 지내던 이웃의 가장 귀한 존재인 이웃의 아내를 향한 죄입니다. 

이런 죄는 공동체 전체가 증오에 빠지게 만듭니다. 가정이 무너지게 됩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도저히 회복할 수 없게 됩니다. 다른 죄는 용서가 어느 정도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누명을 씌워 버린 남편은 용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내 아내를 범한 이웃을 용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돈을 빌려 주었는데 갚지 않는 죄와는 다릅니다. 사업을 하다가 거짓말을 한 경우와는 다릅니다. 싸우다가 한 대 치고, 얼굴에 상처가 나게 한 죄악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갈수록 성적인 범죄를 쉽게 생각하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욕망을 충족하면서 사는 것이 괜찮은 것처럼 생각하고, 선을 넘어가는 일이 많고, 그런 일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 꽉 막힌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한 번의 쾌락을 만족 시키고, 감정대로 행한 삶은 나 뿐만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비롯한 가까운 친구들, 자녀들, 부모님에게 도저히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인 하나님의 사랑이 깨어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삶을 송두리째 파괴시킵니다. 

이런 악을 제하고, 벗어나고, 이겨나가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가 교회되고, 가정이 가정되고, 이웃이 이웃되는 가장 중요한 일임을 기억하면서 내가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고, 가정을 위해서 헌신하는 가장 중요한 일로 받아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헌금하는 것보다 성적인 범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가정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웃에게 어떤 기여를 하는 것보다 이웃의 아내를 지켜주고, 범하지 않는 것이 더 훌륭합니다. 

오늘날 결정적으로 교회가 무너지는 것도, 가정이 무너지고, 이웃과의 관계가 깨지도록 하는 것이 이것임을 기억하면서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