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3장 19 24장 9절 말씀
-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19-25).
형제에게 꾸어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은 무엇을 말할까요? 손해 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돈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 위험성이 있고, 돈이 없어지면 내 삶은 많이 불편합니다. 돈을 은행에 맡기면 이자가 불어납니다. 돈을 통해서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해줄 기회가 되면 쓸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빌려 준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자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빌려주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빌라는 것을 쉽게 말합니다. 빌려 주는 것도 주는 것 만큼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형제를 위해서 내 기회, 내 여유, 내 풍요를 다른 사람들이 무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라고 합니다. 빌리는 사람, 빌려주는 사람들이 모두 사랑 안에서 하나되는 기회, 형제됨을 확인하는 은총, 평생 감사하고, 평생 서로는 돕는 관계가 되는 그런 빌려줌과 빌림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삶을 은혜 중에 살아가면 참 좋겠습니다. 서원을 받드시 갚으라고 합니다. 신약에서는 서원하지 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은 서원하면 갚아야 하고, 서원하지 아니하면 무죄하리라고 합니다. 누가 서원한 것을 이룬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아침 안개와 같은 존재인데 말입니다. 서원을 하는 삶보다는 말씀에 조용히 순종하는 삶이 더 귀합니다. 떠들어 대고, 드러내는 삶보다는 말없이 기도하고, 조용히 사랑하면서 사는 삶이 되고, 이름을 드러내고 헌금하기 보다는 이름없이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더 귀한 것 같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던 베드로도 주를 위해서 죽겠다고 했는데 못했습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가 연약하니 사랑해도 못할 수 있고, 하고 싶어도 못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기억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가면 마음대로 먹어도 되지만, 그릇에는 담지 말라고 합니다. 손으로 이삭을 따도 되지만 낫을 대지는 말라고 합니다. 이웃의 사랑, 이웃의 배려를 받는 사람도 배려한 이웃을 향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사랑을 받는 삶에서 사랑을 이용하는 자리로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사랑을 받는 삶에서 사랑을 요구하는 삶으로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사랑을 받는 삶에서 사랑을 당연시하는 삶으로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사랑을 받는 삶에도 분명 절제가 필요하고, 한계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이 되지 않으면 사랑한 사람들이 상처를 받게 되고, 배려한 사람들의 마음이 고통스럽게 됩니다. 더욱 사랑을 받을 때도 겸손하며, 당연시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2. 이혼과 재혼에 대하여(1-4). 예수님은 이 본문에서 이혼을 하도록 하는 이유는 모세가 그들의 강팍함 때문에 허락한 것이지 이혼해도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성경에 나왔다고 해도 된다는 생각은 조심해야 합니다. 왜 이것을 말씀하신 것인지, 나는 이 말씀을 듣고 말씀에 나왔으니까 보다는 내 강팍함을 알아가고, 내 죄를 알아가야 하는구나 하여야 합니다. 성경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분을 생각하여야 하고, 나에게 이 말씀을 주신 분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묵상하여야 합니다. 이혼해도 된다는 말인지, 숨겨진 강팍함을 이혼을 통해서 드러내려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혼을 정당화함이 아니라 내 강팍함을 회개하게 하게 함과 동시에 이혼을 통해서 내 강팍함이 드러나도록 하는 하나님의 징계의 차원에서 이혼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참 좋겠습니다. 성경에 나왔다면 하면서 강팍한 마음으로 성경대로 산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입니다. 이런 사람보다는 오히려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세리와 창기가 더 의롭다 함을 받을 것 같습니다. 성경대로 사는 삶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