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장 1 8절 말씀
- 나의 나 된 것은?(1).
자신이 자신 된 것이 무엇 때문인지,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어떻게 해서 되었는지를 고백하는 것이 자기 정체성입니다. 자존감과도 연결되어 있고, 삶에 대한 확신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정체성도 희미하고, 자존감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확신이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바울과 같은 정체성이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이라고 자신을 말합니다. 너무 거창하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과대망상이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그냥 말에 그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100% 동의하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고, 이미 성취된 것이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정체성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도 괜찮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괜찮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너무 자신에 갇혀 있는 삶에서 벗어나 든든한 아버지,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은혜로 인생을 살아갑시다.
2. 나의 나 됨에서 나오는 축복(2). 바울은 이런 정체성, 이런 확신을 가지면서 디모데에게 이런 축복을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자신의 정체성이 변할 때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나처럼 너에게도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임하기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선언하는 것입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나는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대단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에서 다른 사람에게도 대단한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평강과 긍휼이 있기를 축복해주면서 교제하면 좋겠습니다.
3.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3-8). 밤낮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 외조모 이야기, 어머니 이야기를 합니다. 안수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가운데 오는 고난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과 함께 오는 고난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고난이 두려운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없는 가운데 받는 고난이 무섭고 두렵고 끔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가운데 있으면 고난이 문제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고난을 받아도 괜찮은 상태에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음과 함께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가운데 당하는 고난은 능히 받아도 됩니다. 이런 고난은 받을 만한 가치가 있고, 받아도 좋습니다. 고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받아도 되는 고난을 받으니 좋고, 하나님의 능력이 가득한 가운데 받는 고난이니 행복하고, 복음이 전해지면서 당하는 고난이니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받는 고난이니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은 고난입니다. 이전에는 전혀 다른 고난이었는데 이제 우리가 겪는 고난은 정말 거룩한 고난, 다른 고난, 질적 차이가 있는 고난을 받으면서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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