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5장 1 19절 말씀
- 유다 자손의 경계(1-12).
우리가 보기에 지루한 말씀이 나옵니다. 유다 지파의 남쪽 경계를 먼저 이야기 합니다. 이어서 동쪽 경계, 다음은 북쪽 경계, 그리고 서쪽 경계를 말합니다. 첫째, 유다 지파는 3면이 적과 붙어 있습니다. 북쪽 지역을 제외한 남쪽은 애굽, 동쪽은 에돔, 서쪽은 블레셋이 접해 있습니다. 큰 지파인 유다, 많은 땅은 가진 유다는 그만큼 나머지 지파의 방패 막이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받은 자들, 큰 자들이 겪어야 하고,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이 유다 지파는 땅과 함께 주어집니다. 땅을 보면 유다 지파가 져야 할 책임도 보입니다. 내 재산을 보면 내가 섬기며 살아야 할 책임도 느껴야 합니다. 내 능력과 지위를 생각하면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도 느껴야 합니다. 나이가 얼마인지를 계수해 보면 내가 섬기고, 도와야 할 책임이 얼마인지도 느껴야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재산과 지위, 나이와 연륜, 경험으로 갑질하거나, 권리를 누리려고 하기 보다는 섬기고, 감당하고 공동체에서 큰 짐을 지려는 마음들을 가지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둘째, 유다 지파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지파들도 이렇게 자세히 거의 10절이 넘는 분량으로 경계선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대충 여기가 너희 땅이야 하고 넘어가도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한 묘사, 표식들은 앞으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지파 간의 영토 분쟁이 제가 보기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입니다. 계약서가 정확하면 분쟁도 적어집니다. 분명하고, 명확한 것이 필요한 땅의 경계선을 자세히 묘사함으로 이스라엘이 1000년 동안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경계선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에는 19장이나 27장에는 경계표에 대한 말씀이 엄중하게 나옵니다.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네 소유기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이렇게 경계선이 정확할 때, 경계선을 잘 지키면서 서로를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침범하지 않고, 내 맘대로 옮기지 않고, 힘이 있다고 경계표를 옮기지 않는 삶의 기초가 되는 오늘 말씀을 우리도 잘 읽어가면 좋겠습니다.
2. 갈렙의 삶(13-19). 갈렙에게 주어진 땅을 갈렙은 아낙의 소생인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고 헤브론을 얻습니다. 이어서 기럇 세벨을 얻을 때는 점령하는 자에게는 딸 악사를 주겠다고 합니다. 이 일에 그나스가 나서서 점령합니다. 그래서 출가하는 악사는 네겝으로 가면서 윗샘과 아랫 샘을 얻습니다. 갈렙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나이가 많아 늙었지만, 자신의 삶을 드립니다. 젊은 시절 혈기가 왕성할 때만이 아니라 14장에 나온대로 나이가 많아 늙었어도 변함이 없습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서 살아갑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딸까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내놓습니다. 자신이 싸울 수 없을 때, 자신의 딸까지 내놓으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내놓습니다. 딸을 결혼시키면서 받을 지참금도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당대에 부모로서 얻을 수 있는 지참금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내놓고, 결혼하여 떠나가는 딸에서 윗샘과 아랫샘까지 내주는 갈렙의 삶을 보면서 많이 깨닫습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변함없이 주님 앞에서 살아가야겠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분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교회에 헌금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말해 주셨는데, 나이 많은 권사님이 전셋집을 내놓고 월세집으로 가면서 전세금을 헌금하는 일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헌금을 적게 하는데도 헌금이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재정 장로님이 말려도 자신이 죽으면 할 수 없으니 살아 있을 때 해야 한다면서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갈렙 같은 여인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은퇴하면서 추한 꼴을 보이면서 교회에서 큰 돈을 요구하는 목회자들과 얼마나 대조되는지 모릅니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한국교회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인생을 드리는 갈렙처럼 우리도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삶을 드리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