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묵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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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누가복음 14장 25 35절 말씀2025-03-24 08:42
작성자 Level 10

누가복음 14장 25 35절 말씀


  1. 큰 잔치 비유와 제자의 삶(25-35). 

성경은 우리에게 결코 부모나 자식을 버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부모와 자식을 미워하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말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연 제자가 되기 위해서 부모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우리에게는 과연 이런 삶이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고, 인생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이며, 자식의 삶도, 남편의 삶도 살지 못하도록 하는 말씀일까요?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아내를 제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는데, 이런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어떤 때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고, 어떤 때는 부모를 미워하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때는 생명이 소중하다고 하다가 어떤 때는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고 해야 할까요? 성경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말씀일까요? 

균형을 잡으면서, 성경 전체가 말하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말씀을 보지 않으면 여기서 이런 말을 저기서는 저런 말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이 말씀, 즉 주님을 따르는 삶에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예수님을 가장 중심에 두고, 예수님이 주인된 인생을 살라는 말씀임은 분명합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이 삶을 잃어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소금이 맛을 잃는 것, 예수님을 중심이 되고,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해서는 뭐든지 포기할 수 있는 삶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묵상해 봅시다. 


이 말씀은 큰 잔치 비유와 잃은 양, 잃은 동전, 탕자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비유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14장 15-24절의 큰 잔치 비유, 15장 전체에 나오는 탕자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비유 사이에 14장 25-35절 말씀이 있기 때문에 두 비유를 통해서 이 말씀을 해석해야 함을 지극히 당연합니다. 두 개의 비유 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 비유의 의미를 담아서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적용해야 합니다. 


먼저 큰 잔치 비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떡을 먹는 자는 복 되도다 하니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성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와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떡을 먹는 복을 위해서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해야 할 희생은 사실 전무합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주인의 사랑을 감사하게 받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인이 준비되었다고 17절에 말합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은 사실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밭을 샀다고 하고, 소를 샀으니 시험하여 보겠다고 하고, 장가 들었으니 못 가겠다고 합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할 헌신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도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 저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할 헌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을 사랑으로 받는 것, 그 감격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나같은 사람을 초대하고, 나를 불러 주신 분의 사랑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중심에 있으면 됩니다. 여기 나오는 맹인, 다리 저는 사람, 몸 불편한 사람들에게 모든 소유를 팔고, 부모와 형제와 처자까지 버린다는 의미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주님이 실제로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 더 소중한 분이며, 모든 소유보다 더 소중한 분임이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평소에는 늘 부모와 형제와 처자를 돌보고, 자기 소유를 돌보면서 살아가지만, 이미 오래 전에 약속한 그 날에는 부모와 형제와 처자와 소유보다 약속에 더 신실하면 족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경우, 어떤 특정한 시간에 어떤 것보다 더 주님을 사랑함을 고백함으로 그분의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주님은 소유를 가질 마음도, 부모를 버리라고 할 마음도 없으십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면서 살면 됩니다. 

뒤에 나오는 3가지 비유 그중에 탕자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말씀도 그렇습니다. 탕자가 헌신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탕자가 버린 것도 없습니다. 그가 한 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에 의탁하는 것입니다. 소유도, 친구도 쾌락도 다 쓸데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탕자가 떠날 때도 모든 소유를 내주었고, 탕자가 돌아온 후에도 모든 소유를 내어 줍니다. 가락지, 신발, 옷 가장 좋은 음식과 달려 나가는 사랑을 합니다. 


두 비유에서 헌신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소금이 가져야 할 맛은 짠 맛입니다. 제자가 가져야 할 삶은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우선순위레 두는 삶읿니다. 내게 있는 밭, 아내, 소를 시험해 보고, 아내와 보내는 것보다 그 날, 적어도 그 청함을 받은 날, 나를 사랑으로 초대한 주인에게 적어도 그 시간에는 모든 것보다 그 주인에 대한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 필요한 맛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소금입니다. 주인은 그 소유, 아내, 소를 드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약속, 그 언약을 기억하고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아들, 탕자가 가져야 할 소금, 그 맛은 잃어버렸던 아들의 마음, 아버지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삶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소금의 맛, 그 본연의 삶, 가치입니다. 아들이 해야 할 헌신은 없습니다. 그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도로서의 소금의 맛이며, 제자의 삶의 핵심입니다. 

물론 탕자가 돌아오는 것을 헌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고,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이 그 날을 잘 지키고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헌신이라고 표현하고, 희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저는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 은혜를 깨닫는 마음, 아무런 가치 없는 존재, 맹인 같은 나, 다리는 저는 나, 울타리 밖에 있는 나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의지하는 마음이야말로 소금의 맛, 성도의 본질적인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전후문맥,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아브라함부터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드러난 복음의 의미에서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