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장 19 40절 말씀
- 세금을 내는 것에 집중한다는 의미(19-26).
세금을 내는 것에 집중해서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고 질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질문에 인생을 집중할 수도 있고, 이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예수님께 집중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23절에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는 분입니다. 내 마음을 아시는 분입니다. 어떤 간계를 부르든, 어떤 질문으로 자신을 포장하든, 어떤 겸손으로 자신을 감추든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분으로 오늘 말씀에 나옵니다. 질문은 보통 제자가 선생님에게, 아이가 부모님에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19절에 나오는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겸손인데, 꾸며낸 겸손입니다. 겸손인데 다른 사람을 넘기려고 하고 책잡기 위한 겸손입니다. 20절에 이렇게 기록됩니다.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라고 합니다. 세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들의 간계를 아셨다는 것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동전을 가져오도록 해서 그 간계를 무너뜨리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마귀의 간계와 모든 사람들의 간계를 물리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혹시 요사이 사람들을 높이면서 선한 마음으로 높였습니까? 혹시 나를 낮추면서 참된 겸손으로 낮추었습니까? 내 겸손은 자신을 정말 낮추는 겸손인지, 정말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는 겸손인지, 아니면 더 높아지기 위한 겸손이며, 내가 더 사람들 앞에 교양있게 그럴 듯한 사람으로 비추면서 내가 원하는 자리, 인정 받는 자리에 들어가기 위한 겸손인지 돌아봅시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아시는 분입니다. 가이사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십니다. 너의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성경을 볼 때마다 예수님께 집중합시다. 예수님은 세금을 바치느냐, 마느냐보다 하나님이 주인된 인생이냐, 아니냐가 중요함을 말합니다. 우리는 세금을 바치느냐, 마느냐인데, 예수님은 네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우리도 사람들의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질문에 사로잡혀 살아갑시다.
2.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27-40).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예까지 들어가면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논리로 보면 7형제의 아내가 되었던 여자 분과 같이 현실에서 재혼을 하는 분도 있고, 양부모를 가진 분도 있고 한데, 부활이 있으면 일대 혼란이 일어나니 부활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분명합니다.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이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 나라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존재 형태를 세상 나라의 질서를 옮겨 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질서와 통치, 존재의 형태, 그 나라의 다스림의 원리와 통치자 모두가 다 다릅니다. 그런데, 이 세상 나라의 논리로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면서 부활이 없다고 말하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혹시 우리도 이런 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나와 하나님이 다르듯이, 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는 다르며, 내 이해와 내 지식, 논리, 상식보다 더 크고 높고, 비교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질서로 충만한 나라임을 고백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