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장 41 47절 말씀
- 예수님을 다윗의 주로 안다는 것(42-44).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면서 부활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거부할 명분을 찾으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질문합니다. 사람들이 어찌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고 합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로 부르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예수님을 알되 육신대로만 아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다윗의 주로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본질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십니다. 본질이 빠지고 외모로만 알면 그 지식은 헛된 지식입니다.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할 때도 다윗의 주되신 분으로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분임을 고백하면 온전한 고백입니다만 다윗의 주되심이 빠진 다윗의 자손으로만 알면 본질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주라는 말은 다윗보다 보다 크신 분 정도가 아니라 다윗은 주인이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왕으로 부름받은 종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을 읽을 때 고후3장의 말씀대로 아직도 수건이 벗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다윗을 배우려고 하고, 아브라함을 배우려고 하고, 다니엘을 배우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은 종,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을 배우려고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주인이시며, 아브라함의 주인이신 분을 만나고 그분을 알아가려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오늘도 신구약 어느 성경을 읽든 어떤 사람이 나오든, 어떤 제도나 사건이 나오든 그 모든 것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배우고 알아가는 삶을 살아갑시다.
2. 높아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45-47).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을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섬가라”. 삼가라는 말은 조심하라, 피하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 이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조심하고, 만남을 피하면서 살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긴 옷을 입는 삶, 즉 권위 있고 대단해 보이는 옷을 입는 것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아는 사람,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는 사람 유명인들을 피하라고 합니다. 조심하라고 합니다. 회당의 높은 자리는 종교 지도자로서 높은 권세를 가지는 사람들 조심하고 피하라고 합니다. 잔치의 윗자리는 세상에서 권세를 가진 서기관을 피하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피하고 조심해야 하는데, 이런 삶을 살려고 하면 큰 일입니다. 성도들도 이런 삶을 피하고 조심해야 하고, 목회자들과 장로님들, 권사님들도 이런 자리, 이런 삶을 조심하고 피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높아지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위험한 것입니다. 권세를 가지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많이 가지는 것은 부패해질 수 있는 위험성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피하고 도망갑니다. 설령 그 자리에 가더라도 낮아집니다. 부자가 되더라도 많이 나누고, 평범한 사람만큼 살고 집이나 차나 땅을 나누고, 베풀면서 살고 언제든지 가난한 준비가 되어서 가난한 자처럼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의 삶의 실체를 47절에서 말합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은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삶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외식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것만큼 큰 죄라는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진실하게 하고, 외적인 포장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게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