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장 17 36절 말씀
- 야고보와 장로들과 교제하는 바울(17-26).
바울은 야고보와 예루살렘의 장로들에게 문안하고 이방인 가운데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에게 권면합니다. 유대인 중에 수만 명이 믿는데 그들이 아직도 율법에 열심히 있는데, 그들 가운데 소문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 소문은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 하고 관습도 지키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어찌하면 좋을꼬 하면서 서원한 네 사람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의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고 합니다. 머리를 깎는 것을 보면 나실인의 서원을 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믿는 이방인에게 율법 전체를 지키도록 하고, 율법으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그 말을 듣고 야고보의 말대로 행합니다. 우리는 늘 상황과 형편 속에서 나의 주관과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간 공동체의 상황들, 성도들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고민들이 야고보에게 있었고, 바울에게도 있었습니다. 복음이면 충분하지만, 때로는 복음을 위해서 율법의 어떤 부분도 부분적으로 수용하기도 하고, 또한 그런 일을 위해서 비용도 내고, 수고도 하여야 합니다. 바울처럼, 야고보처럼 진리 안에서 자유하면서 진리를 위해서 메이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는 삶을 유연하게 살아가면 참 좋겠습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히는 바울(27-36). 이렇게 했다고 결과가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결과가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결과를 가지고 판단하고, 결과를 가지고 과정을 해석하고, 결과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는 아닙니다. 인과응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공동체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처럼 잡히고, 죽이라겨 하는 무리에게 맞고, 쇠사슬에 메이기도 하고 무리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좋은 결과가 아니라 사랑이며, 그 사랑 안에서 모든 일을 당하면서 예수님을 닮아가고 배워가는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듯,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공동체와 배려하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서로 협력하고 연결되고 존중하면서 살아가면 참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