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장 36 16장 15절 말씀
- 다시 형제들을 방문합니다(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복음을 전한 후에 다시 형제들의 신앙을 살피고 도우러 가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심방 같기도 하고, 다시 복음을 확증하러 간 것 같습니다. 고린도전서와 다른 서신서들을 보면 복음을 전하고, 다시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평생 다시 듣고 또 듣고, 전하고 또 전하는 일을 합니다. 로마서도 그렇고, 빌립보서도 그렇고, 에베소서도 그렇고, 골로새서도 그렇습니다. 계속 복음을 전합니다. 다른 복음이 없고, 다른 것을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이면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복음으로 충분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복음이신 예수님을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복음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인 십자가를 알면 충분합니다. 더욱 더 복음을 보고 또 보고, 복음을 듣고 또 듣는 성도가 되기를 힘쓰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2. 바나바와 바울의 다툼(37-41). 바나바와 바울이 다투게 되고, 갈라서서 다른 길로 가게 된 계기는 마가라 하는 요한 때문이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 같은 사람들도 다투기도 합니다. 너무 정죄하거나, 너무 문제 삼거나, 너무 비난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다 부족합니다. 다 연약합니다. 사도들도 그러했습니다. 연약함을 고백하면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면 됩니다. 다툴 수도 있고, 갈라서기도 하지만 다시 용서하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화해하면 됩니다. 정말 문제는 한 번 갈라서면 얼굴을 안 보는 것입니다. 한 번 다투면 원수가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하니 이런 일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화해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 받아들이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마가를 용서하고, 마가를 귀하게 대하는 바울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를 봅시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길 마가와(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와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으니라”라고 합니다. 바나바의 생질 마가를 영접하도록 합니다. 마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이런 회복, 용서, 다시 봄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 연약한데 어찌 헤어짐이나 다툼, 오해가 없겠습니까? 바울과 바나바도 그러했는데 우리는 얼마나 더 그러하겠습니까? 화해와 용서, 신뢰가 회복되는 은혜가 우리의 삶에도 가득해지면 참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