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7장 16 34절 말씀
- 아덴에서의 전도(16-34).
회당에서 늘 복음을 전하던 바울이 한편으로는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경건한 사람들, 즉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과 복음을 전하면서 변론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장테어서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합니다. 그중에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도 쟁론을 합니다. 그들이 바울을 향해서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면서 듣고자 합니다. 아덴는 큰 도시입니다. 아테네로 다양한 사람들, 철학자들과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울은 변론도 하고, 쟁론도 하고, 말쟁이란 말도 듣고, 새로운 가르침이라는 말도 듣습니다. 바울이 그들과 어떻게 쟁론을 했는지는 다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레오바고에서 에덴 사람들에게 전한 설교 형태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라고 하면서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게 드리는 제단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자 반응이 다양합니다.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회당에서 어떤 유대인들이 믿었는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레오바고에서 한 전도를 통해서 믿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름을 기록합니다. 바울의 전도는 항상 성공적이었습니다. 항상 은혜가 있었습니다. 모든 성도의 전도도 그렇습니다. 결과를 중심으로, 숫자를 중심으로 보면 아덴에서의 전도를 실패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단한 기적과 역사를 중심으로 보면 미미한 일이었습니다. 철학자와 같은 당대의 석학이 믿지도 않았습니다. 황제가 돌아온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보면 숫자가 중요한 것도, 대단한 사람들이 돌아온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영혼이 돌아온 것으로 하늘에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린 이 전도는 그야말로 성공적이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덴에서의 전도는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줍니다. 유대인에게도,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에게도, 철학자들에게도, 시장에 있는 우상의 제물을 파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사상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누구에게나, 어떤 사상을 가진 분에게나, 어떤 직업을 가진 분들에게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