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장 14 29절 말씀
-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14-16).
14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예수의 이름이 드러났는데, 온전하게 드러났을까요? 제대로 드러났을까요? 예수님이 막1:1절에 소개한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한 말씀대로 드러났을까요?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았도다 이르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에 하나와 같다 하되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ㅇ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그렇습니다. 헤롯도, 어떤 이들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았던 가족들도, 본 동네 사람들도, 헤롯도, 어떤 사람들도, 바리새인들도,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드러났지만, 더 감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널리 알려지고 있지만, 더 꼭꼭 숨겨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예수님의 이름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 당대에도 이러했습니다. 하물며 오늘날이야 어떻겠습니까? 예수 ceo같은 책이 범람하는 시대입니다. 진정한 웰빙이신 예수님 같은 책이 범람합니다. 사회 개혁자이신 예수님으로 말하는 분도 많습니다. 부흥의 원조라고 말하는 분도 많습니다. 성공의 열쇠라고 말하는 분도 많습니다. 어느 제자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사회를 개혁한 분도 없고, 웰빙 식단을 꾸미며 산 제자도 없고, ceo가 된 제자도 없고, 교회 부흥을 이끈 제자도, 부흥사가 된 제자도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과 명성을 얻는 제자도 한 사람도 없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오늘날도 많이 드러나고, 회자되고 있습니다. 책, 방송, 교회, 학교 등등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예수의 이름이 헤롯에게처럼 드러나고, 어떤 사람처럼 나에게도 드러난 것은 아닌지 묵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헤롯의 과거의 삶(17-29). 예수님에 대한 왜곡은 자신의 과거의 죄, 악한 삶, 정욕적인 삶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욕망 때문에 동생의 아내를 취한 죄로 인한 것입니다. 동생을 죽인 죄로 인한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서,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한 악행을 했던 것처럼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음으로 인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다윗과 똑같은 죄인이지만, 다윗처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의 목을 벤 죄악, 자신의 심령 깊은 곳에 있는 죄악으로 인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을 세례요한이 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잘못 보는 삶은 우리의 죄와 그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삶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헤롯이 세례요한을 죽인 죄를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그 죄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떠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면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면서 그분에게서 복음이 흘러 나옴을 고백하면서 생수되신 예수님께로 나오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시작, 원천, 근원되시는 분이고, 모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시는 참 생수의 근원 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못보는 것은 예수님이 삐딱하게 서 계신 것도 아닙니다. 반쯤만 보여 주고 나머지는 안 보여 주시기 때문도 아닙니다. 너무 멀리 계시기 때문도 아닙니다.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이시고,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면서 삽시다. 그럴 때 예수님을 바로 보고, 예수님을 온전하게 보는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아멘 아멘. |